Jihyun Jung

<곰염섬> / 의미화를 거스르기 _ 맹지영

 

의미화를 거스르기

 

맹지영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예술작품”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은 보통 과거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수한 과거들이 존재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리고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으면서 기록되는 그런 모순된 공간이다. 그러나 정지현은 이번 전시 《곰염섬》에서 공간의 과거를 완전하게 지우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내재되어 있는 과거를 활용하여 “지금”을 구현했다. 한 개인의 현재는 과거가 완전히 거세된 상태로는 존재할 수 없듯이, 정지현 작품의 현재는 그렇게 과거를 품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버려진 혹은 발견된 물건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조형물’들이 그러하듯, 선뜻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조형물’들은 언어를 조합하여 설명하려는 관객의 관성을 끊임없이 무너뜨린다. 《곰염섬》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생소한 무엇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달아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 전시의 가벽을 허물어 그 것으로부터 나온 구조물,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길이가 다른 아시바들을 이용하여 3미터 남짓한 높이로 만들어진 조형물, 그리고 이전 작품들의 조각들이 더해져 관객에게 제3의 신호를 보낸다.

 

2009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정지현의 작품은 작가 개인이 내 외부와 조우하며 자신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신호를 보내온 여정이다. 군대에서 범죄수사의 용의자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형식적이고 부조리한 사건수사의 과정을 겪은 후, 2008년 드로잉 시리즈 <사건수사결과 False Report>부터 그가 만드는 풍경은 시작되었다. 증거부족으로 사건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보고서만 남았다. 그는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 일차원적인 일련의 수사 과정과 결과를 겪으면서, 그 안에서 진실과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과 침묵의 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런 현실로부터의 의문과 질문으로 시작된 <사건수사결과>와, 군 제대 후 현실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진실, 맥락 없이 발생하는 것만 같은 상황들의 파편들을 접하면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전시 《못다한 말 Words Left Unsaid》을 통해 작가로서 작업에 대한 태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못다한 말》에서는 고래가 우연하게 포획되었다는 뉴스나 우주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맹목적인 도전과 믿음에 관한 기사, 경마장에서 경마가 끝나는 순간, 사람들의 믿음이 순식간에 바닥에 쓸모 없는 종이처럼 버려지는 풍경 등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설치 작품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이 전시에서 관객의 선택에 따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거나 지나쳐버릴 수 있는 조건과 제약된 관람의 상황을 만들었다. 전시장의 천장 속에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일들에 대해 숨겨지고 발화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한때 용도가 폐기되었던 물체들의 상이한 조합과 움직임, 그림, 드러난 천장 속의 앙상한 구조와 전선들, 제한된 빛과 그 범위로 인한 그림자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못다한 말》에서 관객은 파편적이고 분절된 풍경화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았다면, 2011년의 《빗나간 자리 Away from Here》는 관객을 풍경 내부로 불러 온다. 한쪽 편에서 던져진 탁구공은 군데 군데 구멍이 뚫린 거대한 탁구대를 통과하기도, 혹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공이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빗맞아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구멍이 뚫린 벽면 뒤에는 작가가 거주하는 석관동 주변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의 기이한 조합들이 펼쳐지고 그가 만들어낸 풍경 안에서 관객도 마치 그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 《곰염섬》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관객을 다시 한 번 그가 만든 풍경으로 소환한다. 《곰염섬》과 《빗나간 자리》 사이에 있었던 세 번째 개인전 《Bird Eat Bird》(2013)에서는 여전히 쉽게 언어화할 수 없는 오브제들로 펼쳐진 낯선 장면들은 개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를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는 기계가 5분에 한 번씩 공중에 물을 분사하며 혹시나 무지개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가늘고 긴 철사의 움직임이 빛과 소리로 변환되어 무명의 수신자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길 거리에서 비둘기가 버려진 닭고기 조각을 먹는 장면을 본 누군가가 얘기해 준 ‘새가 새를 먹는다’라는 문장을 제목으로 한 작가는 그것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집약적인 묘사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이전의 정교하게 만든 풍경과는 달리 제목과 같이 가볍고 함축적으로 접근하면서 수신자의 수신여부를 크게 염두해 두지 않는 듯 무심하게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2014년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숨을 참는 법 How to Hold Your Breath》에서 선보였던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에서는 수신자 즉 관객이 작가가 보내는 신호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작품 제목이 시사하듯, 당연한 일이지만 문장으로 서술 되었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을 드러낸 이 작품 역시 정지현의 과거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한다.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들을 이용하여 살면서 중요하지만 인지하지 못하거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다짐하고 각인시키려는 정지현의 태도는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여 드러난다. 그가 위치해 있는 환경에 따라서 그 소재들은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어쩌면 자신과 같은 주파수의 누군가가 수신하기를 기대하면서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곰염섬》까지 정지현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관객의 감각에 도전한다. 소환할 참조가 바닥난 것을 매번 인식시키며 내 감각이란 것이 무엇인지, 대상을 받아들일 때 ‘순수한’ 감각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대상을 바라볼 때 본능적으로 그것과 닮은 내 과거 경험 속의 시각적으로 친근한 무언가를 불러와 대조하려는 관성을 거스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정지현은 과연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관객은 신호를 받은 지금 당장은 알아차리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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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소설가의 각오』라는 책에서 이미지에 대해서 얘기한 부분이 있다. “[…]과거의 어떤 이미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사고를 거듭하다 보면 그것이 미묘한 형태로, 더구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 있다. […]” 정지현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하나는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 대한 태도는 그렇게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