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 _ 맹지영

 

잊혀진(잃어버린) 풍경화: 내가 잊고 있던 것, 내가 잃어버린 것

 

맹지영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장면 1)
구겨지고 굴절되어 보이는 산이 있다. 이 산은 가까이 다가갈 수도, 또 올라갈 수도 없이 먼 풍경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이 산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물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가라앉혀서 가둔 풍경은 화석이 된다.

장면 2)
캄캄한 방 안, 내 몸 조차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어딘가로 뚫려 있는 듯 보이는 창이다. 창 저편에 보이는 것은 간헐적으로 깜빡 깜빡 거리는 불빛이 보이는 어느 바닷가 풍경이다. 모노톤으로 보이는 이 바다에서 유일하게 현실감을 주는 것은 깜빡이는 불빛과 어느 순간 하늘과 수평선을 물들이는 노을이 보일 때이다. 어두운 공간 어디선가 시계 소리보다 느슨한 운율의 소리가 웅 하는 묵직한 주파수와 진동에 묻혀 들려온다. 어둠에 점점 익숙해 지고 그제서야 벽에 붙어 있는 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장면 3)
수화기를 든다. 순간 공간이 환해진다. 불이 켜지는 순간, 그 풍경은 사라지고 내가 있는 공간이
눈 앞에 들어 온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 오는 누군가의 흥얼거림으로 전화선 너머 다른 공간의
무엇과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안심한다. 그는 창 너머 바닷가 풍경 어딘가에 있는
누구 일까?
어둠 속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내 몸은(존재는) 창이 있던 자리에 비춰져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방 안 어디선가 들려왔던 정체불명의 소리들의 주체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또각 또각, 딱, 딱.
검은 이빨이 튕겨지고, 잘려진 귀 모양의 네모난 조각은 숫자를 세고 있다. 수화기를 내린다.
다시 어둠이다.

장면 4)
방을 나온다. 문 옆 투명하고 둥근 등 안에는 핑크색 불빛을 머금고 매일의 변하지 않는 기록이 담겨 있다.
갑자기 등 안으로 훅하고 숨이 들어온다.
매일의 나는 흩어지지만 다시 어딘가로 묻히고 만다.

 

정지현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비현실적인 상황의 추상적 공간으로 섬세하게 밀어 넣어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다. 그 풍경들은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경하고, 느닷없으면서도 조용하다.

마치 화석처럼 보이는 비현실적인 산의 풍경은 정지현의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2014)을 경험하는 전주로 작용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생경한 모습의 산과 관객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는다. 그 둘 사이의 기묘한 줄다리기는 흡사 현실에서 개개인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과의 거리, 그리고 사회 속 개인과 타인과의 공간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한 일>은 작가 개인의 서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연극과도 같이 보이지만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것처럼은 보이진 않는다. 그 서사는 무명의 그것을 수집한 것이기도 하고, 작가 개인의 무(유)의미한 행위의 기록이기도 하다. 정지된 듯 움직임이 거의 없는 바다를 관찰한다거나,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몸의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기록 등을 통해 작가는 온전하게 개인의 시간을 확보하며 소란스런 사회 속 집단의 삶들에 차이의 파동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숨을 참는 법> 2014 두산갤러리
일상에서 발견하는 개인의 ‘거대한’ 흔들림을 찾아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