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빗나간 자리 _ 우아름

 

관객들이 입장하자마자 만나는 장면은 상대편 없는 외롭고 기이한 탁구 경기다. 탁구공을 가득 담은 카트에서 간간이 공이 어딘가로 튕겨나가고, 토막난 뉴스 보도가 들린다. 맞은 편에 비스듬히 놓인 가벽에 뚫린 몇 개의 구멍을 발견하면 모두들 비슷한 희망을 품는다. 공이 저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핑’이 ‘퐁’으로 화답 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무수한 공이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불가능의 세계’를 뒤로 하고 방금 전의 희망을 좇아 가벽 뒤로 돌아가보면, 이번에는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사물들이 저마다의 템포로 움직이다가 옆의 사물들과 충돌해 소리를 내거나, 물리적인 계기에 의해 함께 회전한다.

정지현은 끊임없이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길들 사이에 여분의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많은 뉴스들에 파묻혀 살게 된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공들처럼, 근원이 밝혀지지 않은 불길하고 충격적인 뉴스들은 듣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보린다. 무언가에 열렬히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갈래길 사이에, 무수한 고민과 선택 가능한 태도들의 스펙트럼이 있음에도, 현실은 곧잘 찬성과 반대라는 양극화된 카테고리로 나뉜다. ‘너의 색은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성급하게 선택하게 되곤 하는 두 가지 태도, 무관심이나 불안으로 날아온 공을 제대로 받아 칠 수 없다. 공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어지럽게 했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미심쩍은 수사의 종결, 혹은 ‘충격적인’이나 ‘놀라운’이라는 수사로 범벅된 뉴스보도로 결말지어져 사라진다. 사건의 본심은 곧잘 베일에 싸인다. “언젠가부터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수많은 공을 일일이 리시브할 수 없다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기 보다는, 차라리 내 앞에 떨어져 잇는 공들을 줍는 게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뜻하는 떨어진 공을 줍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가능성이 열린다. ‘줍는다’는 동작은 그 동안 작가가 동네에서 버려진 오브제를 주웠던 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느 날 바다에 갔는데, 맥락 없이 해안가로 쓸려 오는 것들이 많았어요. 저에겐 매력적인 오브제들이었죠. 뉴스나 이런 오브제들이나,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것을 줍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지현은 이렇게 주운 오브제를 각각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사물들끼리의 연관관계로 맺어진 방을 만들고 움직임을 발생시켰다. 강력한 의지를 지닌 한 사람이, 바깥에 대한 어떤 불안도 없이 빚어낸 ‘가능성의 세계’이자 ‘관심의 세계’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단지 무책임한 환상이나 자족적인 환상, 현상을 무시하고 회피하는 방종으로 귀착될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었다. 전시라는 만남의 형식은 다시 바깥으로 향하는 소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전시에서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보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특수한 위치’에 처하곤 한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관객들은 천장 밖에 붙잡을 곳이 없는 불안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천장 너머에 설치된 작업을 관람해야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의 몸 전체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갈래길 사이에 마련된 여분의 공간 같은 정지현의 방은 찬성과 반대처럼 양극화된 카테고리에 쉽사리 포섭되지도, 누군가가 섣불리 외친 구호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중간지대를 마련하는 그의 습관은 이번 전시의 공간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탁구대가 놓인 전시장 초입은 우리들이 사건 사고와 대면하는 공간이다. 가벽 뒤에 펼쳐진 공간은 작가의 자화상과 같은 자족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무대 뒤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전시장 한 귀퉁이의 바닥에는 아무도 없는 어두침침한 바다를 찍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원초적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산 속에 들어가 있는 도인들처럼, 누구나 때로는 잠시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잖아요.” 멀리서 찍은 뿌연 바다 영상에는 무관심도 불안도 아닌 정서가 고여있었다. 많은 소식들 앞에서 찬성이나 반대가 그려진 피켓을 재빠르게 들기 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고민과 망설임의 시간과 때때로 숨고 싶은 마음까지 배려하는 작가의 마음이다.

출처 : 스페이스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