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메모 또는 낱말 이전 _ 김정현

 

                                    -김정현, 미술사

 

 

사물.

사물이 물질적 대상인 동시에 정신적 대상이란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지만 습관적으로 물질성보다 정신성이 앞서게 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골칫거리다. 특히 예술한다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전시를 앞두고 있는 정지현 작가의 작업실에 방문해서 수북이 쌓여있는 사물을 구경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의 넝마주이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전시장으로 옮겨 제대로 설치하기 전의 모습과 몇 마디 설명을 듣고 작업을 상상해야 한다는 곤란한 과제를 목전에 두고 귀를 기울였다. 정지현은 작업이 ‘사물의 상징성을 해체하는 개입’이라 생각하면서도 딱한 사람들을 위해 주워온 사물의 유래를 알려주는 게 익숙한 듯 보였다. 구석에 그저 모아놨을 뿐인 재료부터 직접 디자인한 선반과 입체적인 프레임에 맞춰 진열해둔 것까지 소재와 형상의 출처가 분명했다. “왜 코끼리인가요?”, “구겨진 포장지가 형상화하는 것은 뭔가요?”, “독수리를 묘사한 건가요?” 이런 질문들은 출처가 밝혀지는 순간 자동 폐기되었다.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유와 상징으로 사물을 파악하려 하는 시도는 공간적으로 해체된다. 작가는 사물을 수집하고 조합해서 무대에 올린다. 퍼포먼스를 일으키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본격적인 작업이라 할 텐데, 여기서 무대는 ‘망망대해’이다. 과자 상자로 만든 코끼리, 타이어 포장지, 쌍둥이 목각 독수리가 주인공이다. 소품이 배우가 되고, 배우가 소품이 되는 세계. 물결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포착하려는 시도(<템즈>, 2012)는 매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소품-배우가 놓인 무대를 고정된 의미로 파악하려는 생각도 버리는 게 좋다. 시나리오는커녕 계속해서 움직이는 환경만이 조성되어 있으니.

 

시간.

포착할 수 없는 시간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설치 미술은 복합 재료를 사용하여 주제를 공간적으로 환기시키며 주어진 전시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는 장르이다. 그러나 정지현의 작업에서 시간적 유동성은 이러한 설치 미술의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작동 범주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범죄 현장에 비한다면, 사건이 종료되어 흔적만 남은 공간이라기보다 아직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해변을 가로지르는 기계 장치가 바다에서 벌어지는 고래잡이에 대해 읽을 수 없는 보고서를 작성하듯(<Night Walker>, 2013), 정지현은 어딘가에서 의심스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발화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적 태도를 취한다.

 

리듬.

시간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동안 유일하게 감각할 수 있는 건 시각적 밀도의 리듬이다. 무대 소품의 만듦새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이야기에 필요한 만큼만, 보이는 만큼만 꾸미기 때문이다. 정지현은 이런 헐거운 미감을 재구성하여 배우가 없는 혹은 소품이 배우가 되는 무대를 만든다. 사물의 밀도가 높은 공간은 모종의 발언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어떤 분위기만 자아낼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