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자리 _ 김영글
개인전 ‘빗나간 자리’
김영글, 2011,
관객 앞에 기이한 탁구 경기가 펼쳐진다. 선수도 탁구채도 없다.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손수레 안에 탁구공이 가득 쌓여 있고, 맞은편에는 드문드문 구멍 뚫린 벽이 서 있을 뿐.
버튼을 누르면, 탁구공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입구를 통해 무작위로 튀어나온다. 마치 복권이 당첨되는 순간 같다. 하지만 튀어나온 공들은 아무 데나 가서 부딪힌 다음, 힘없이 굴러가 버린다. 이따금 운 좋게 벽의 구멍을 통과하는 공도 있지만, 들려오는 건 팡파레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뉴스 소리다.
“상대방이 보낸 공을 어떻게 받아 넘길 것인가?”
탁구 경기의 핵심적 질문을 현실에 대입해보는 데서 정지현의 작업은 출발한다. 그러나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은 탁구의 세계처럼 순탄하게 쌍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중매체는 오늘도 세상의 소식을 열심히 전달해 주지만, 뉴스 한 토막이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간에 흥미진진한 관심사로 떠오를수록 의구심은 커지게 마련이고, 때로는 무관심이 가장 편리한 선택지가 된다.
기상천외한 사건들. 믿기 힘든 정보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들. 작가가 지금까지 수집해 온 현실세계의 풍경은, 한마디로 카오스다. 그 속에서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을 예민하게 가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작가는 대답을 유보하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어떤 가능성의 세계를 구축하기로 한다. 무대 뒷편, 벽이 감추고 있던 공간에, 또 하나의 카오스를 만드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쓸려 온 동물의 턱뼈, 골목길에 버려진 액자와 고장난 악기, 괘종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시계추…. 정지현은 우연히 주워 모은 사물들을 분해하고 결합해 수수께끼같은 오브제로 변형시킨다. 나름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의외의 움직임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제 사물은 원래의 이름을 잃고 명사로 형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거기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우연과 필연이,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이런 실험의 공간에서 진실게임이 필요할 리 없다. 작가가 펼쳐 놓은 심리적 풍경의 이미지들이 담담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빗나간 자리>는 세상에 대한 의심과 무력감 위에 일시적으로 세워지는 확신의 세계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믿어야 하고, 믿을 만하고,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자꾸 보게 되는 것은,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예술가의 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