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자리 _ 이슬비
휴식은 있지만 멈춤은 없다
이슬비, 월간 미술 2011년 12월호
첫 번째 공이 바닥으로, 두 번째 공이 도랑으로, 세 번째 공이 물속으로 떨어진다.” 9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정지현의 개인전 <빗나간 자리>가 열렸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먼저 내려가는 계단 도중에 허공에 매달려 움직이는 탁구채를 마주하게 된다. 정작 탁구공은 탁구채가 아니라 선풍기틀을 맴돌고 맞은편 벽을 향해 날아간다. 가끔 몇 개 없는 구멍을 통해 벽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공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아무 데나 부딪친 다음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기 일쑤다.
날아오는 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세상에는 너무 많은 허구가 존재한다.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가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 대항하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고개를 돌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작가는 거기에서 무관심 내지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러한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부조리한 세계의 속내를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발길에 덧없이 체이는 허탈한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전시장 안쪽 통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면, 꿈꾸는 다락방 혹은 비밀공장으로 향하는 신비스러운 통로가 열린다. 작가의 손끝이 닿은 새로운 세계에 초대된 것이다. 동물 턱뼈가 공책 스프링에 매달려 덜컥거리고, 기타는 스스로 심드렁하게 연주를 한다. 식탁다리에 매달린 플라스틱 컵들은 냄비에 담긴 물을 퍼 담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사실 매우 이질적이고 생뚱맞은 조합이다. 대부분 세상에서 낙오되고 길을 잃어버린 것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퍽퍽한 삶에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나약한 존재들이지만 서로의 손을 맞잡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느슨하고 불안한 움직임을 바라보면 제대로 하는 것은 별로 없는 데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들의 비루한 움직임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욕심이 생기고 또 갈증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삐걱거리고 서걱거리며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물들의 반복된 웅얼거림은 푸념 혹은 잡음으로 들리지만 어느 순간 다르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향한 다짐으로 느껴진다. 빗나간 기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의지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움직임은 사실 고장도 잘 나서 전시기간 동안 제대로 작동되는지 틈틈이 살펴야 한다. 휴식은 있지만 멈춤은 없다. 우주를 향한 꿈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인생의 탁구 경기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