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못다한 말 _ 김지연

 

 

김지연 (미술 이론가/ 디렉터), 2010

스르륵 톱니가 돌기 시작하면, 장난감 말이 달리고, 낚싯줄에는 고래가 걸려들고, 노란 빛이 껌뻑거린다. 버려진 물건의 일부인 것 같은 조각들이 얽혀, 누렇고 뿌연 풍경 속에서 느리게, 삐거덕거리며 조금은 멍청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다. 한쪽 조각패널에 그려진 우주인의 모습이며, 곳곳에 붙어있는 마권조각들은 이 기이한 풍경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정지현의 작업 속에 알쏭달쏭한 기호처럼 배치되어 있는 요소들 가운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는 우주, 고래, 그리고 경마이다. 이들은 작가에게 알 수 없거나, 밝힐 수 없거나, 사실과 다른 것들을 상징하는 대상이다. 매스컴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우주의 세계는 좀처럼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정보가 편중되어 있고, 그 양이 많지도 않기 때문에 사실, 그 실체는 아는 사람만 안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기 어려운 이 대상은 믿음과 의심을 낳아, 온갖 음모론의 모태가 되고 있다.

변두리뉴스에 심심하면 등장하는 고래포획 뉴스는 밝힐 수 없는 사건의 현장이다. 현재 한국에서 고래의 포획은 불법이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고래가 그물에 걸려 들어와 죽으면 이를 유통하는 것은 합법이다. ‘잡는 것은 불법이나 먹는 것은 합법’인 기묘한 현실속에서 우연한 ‘혼획’을 가장한 의도적 ‘포획’이 일어나고 있지만 실체를 밝히기는 어렵다.

건전레포츠’의 장인 경마장은 모여든 이들이 뿜어내는 무거운 담배연기에 쩐 공기를 통해 사실은 ‘도박장’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버린다. 한순간에 배팅하고, 실패하면 휴지조각이 되어 공중에 흩어져버리는 마권은 한 경기가 끝나고 나면 깨끗이 쓸려나가고, 경마장은 다시 새로운 한 판을 위한 정비를 마친다. 작가에게 이 장면은 촛불집회 당시 거리의 모습과 유사하게 비쳐졌다. 축제처럼 화려하면서, 미사처럼 장엄하고 동시에 패싸움처럼 폭력적인 집회의 밤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밝고 평범한 낮의 일상이 전개된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세우는 ‘건전한 풍경’의 사실여부 역시, 아는 사람만 안다.

희망과 의심, 거짓이 반복되고 있는 풍경들 속에서 우리는 믿음과 의심 사이에 끝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정지현작가는 그 긴장 가운데 ‘불안함’이 태어나고, 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사회현실에서 등 돌리고 개인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현실적 폭력성의 세계로부터의 도피처로 저항의 환영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환영의 세계는 사회와의 소통과 결별 사이에 갈등하는 정지현에게 도피를 선택하는 개인의 무력감에 대해 반성하고, 세상과 교신할 ‘새로운 형태의 어떤 대안적 실천’ 에 대해 고민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작업실 천장 위에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한 때는 소중했으나, 더 이상은 주인에게 의미를 주지 못해 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을 주어와 만든 키네틱 작업들을 비롯해, 정지현 자신에게 있어서도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럽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작업들이 천장 위 콘크리트와 석고보드 사이 틈새공간에 자리 잡았다.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그 은밀한 공간을 뚫고 올라간 그는 반복적 생활 패턴 속에서 힘을 잃고 버려지는 것들, 멀어지는 것들, 그렇기에 현실에 거리를 둔 공상의 자양분이 되는 파편들에게 새로운 자리를 찾아주면서 또 다른 가치를 부여했다.

버려진 것들이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판타지를 만나기 위해, 관객은 책상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만 한다. 정지현은 관람을 선택한 관객만이, 불안한 상황을 감수하고 몸을 움직여 볼 수 있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지도 수긍하지도 못하는 개인의 무력감에 대한 반성의 장을 열어놓는다. 관객은 계속 잡고 있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놓아버리는 것도 망설여지는 믿음과 의심의 줄을 쥔 채 안절부절하는 현실과 환영의 장면을 그의 작품이 펼쳐놓은 판타지에 투영해 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 사회와 교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방법론를 실험하면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