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땅 & 가방을 든 사람 _ 이한범
갈 수 없는 땅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어 난지 아카이브 웹진에 수록되었으며, 가방을 든 사람은 양구 공공미술프로젝트 창작 양구 네트워크 아카이브집에 수록되었다.
“여간해선 포획되지 않는 대상을 고찰하고자 할 때 쓰레기만큼 적합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브라이언 딜, 쓰레기 중에서
“가장자리 따위는 없는 둥근 지구의 어디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에덴동산은 없다. 멀리까지 탐험해 상상 속 괴물들을 지도 밖으로 쫓아냈지만, 대신 스스로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유디트 샬란스키, 머나먼 섬들의 지도 중에서
사월의 어느 날, 나는 부서진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 높은 단층절벽을 등진 긴 해변을 걸었다. 해가 뜨기 전이었고 모래와 자갈이 섞인 땅은 검었다. 그곳은 어느 지도에도 지명이 나오지 않았고 표지판도 없었으며 오래 살아온 마을 주민에게 물어도 보았으나 그도 그곳의 이름을 몰랐다. 정확하게는 “거기는 이름이 없지”라고 그는 말했다. 이름 없는 해변에는 조약돌처럼 둥글게 마모된 유리 파편과 은색 단추, 고무 타이어의 부스러기, 이마트 비닐 봉투, 굵은 밧줄 꾸러미, 초록색 그물 뭉치, 떨어져 나온 스티로폼, 철제 책상 다리, 화투장 같은 것들이 너부러지듯 웅크리듯 놓여 있었다. 오랜 동안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파도가 오간 흔적만 남은 정갈하고 완만한 언덕에는 검은색 야구 모자가 뒤집어져 속을 내밀고 축축한 모래와 함께 뒤엉켜 있었는데, 여섯 개의 패널을 이어 붙인 봉제선을 따라 “FEEL THE JOY”라는 문구가 여섯 방향으로 뻗어 나가 있었다. 세속적 욕망을 요구하는 경쾌한 목소리를 들어줄 이는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이름 없는 해변에 닿게 된 이유와 온갖 물건들이 거기에 오게 된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자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다가, 걸어왔던 발자국을 따라 해변을 되돌아 나갔고, 섬을 떠나 도시로 돌아왔고, 해변에서 주워 온 크기가 다른 매끈한 돌 다섯 개를 선반에 올려 두었다.
사람은 저마다의 장소를 걷는다. 저마다의 걷는 장소를 가지고 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자신이 걷는 장소를 통해, 그 장소를 걷는 것을 통해 진실을 찾는다. 레이첼 카슨과 쥘 미슐레는 땅과 바다의 경계를 걸으며 바다를 이해했다. 다만 그들은 서로 다른 바다를 가졌는데, 카슨은 바다에서 끊임없는 죽음의 순환과 생명의 이동을 보았고 미슐레는 역사를 보았다. 로렌 아이슬리와 허수경은 모래와 바람만이 가득한, 사막이라고 하는 현재의 외부를 걸었다. 박솔뫼는 오래된 도심을 걷고 류한길은 꺼끌꺼끌한 소리의 진동을 타고 걷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장소를 걷는다는 것은 일종의 방법이다. 강고한 물질과 이미지가 허튼 짓 딴 생각 못하게 우리를 틀어막는 힘을 약화하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실재를 발견하는 방법. 픽션은 거기서 시작한다.
정지현이 나를 차에 태워 데려간 곳은 성동구 송정동의 폐기물 집하장이었다. 그는 언젠가 그곳이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지 내게 말한 적이 있었고, 왠지 모르겠지만 나도 단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지형지물과 지명이 빼곡히 들어 찬 서울 지도에서 송정동은 외딴 섬처럼 텅 비어 있었다. 지도라는 이미지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된 곳은 군부대 같은 기밀 유지가 필요한 구역이나 길 없는 숲 정도일 것이다. 들어가지 못하는 땅이거나 이미지화 할 수 없는 규칙이 지배하는 땅. 송정동에는 쓰레기를 끊임없이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와 무지막지하게 움켜쥐고 퍼 나르는 중장비 소리의 리듬이 가득했고 종종 작은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란스러움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는 온갖 잡다한 재활용 쓰레기가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고철은 고철대로, 알루미늄은 알루미늄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한때는 위용이 대단했을 대형 트럭의 녹 쓴 차체 프레임과 포크레인의 손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는 송정동을 가로질러 걸으며, 이곳이 비록 도심 한복판의 땅이긴 하지만 마치 모든 물건들이 파도에 떠 밀려 온 것 같다는 말을 나누었다. 물건들은 어떤 높이와 어떤 속도의 파도에 실려와 저마다의 정해진 자리에 안착한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비슷한 질량을 가진 것들이 한곳에 덩어리져 모여 있었다. 우리는 그 파도라 이를 수 있을 것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 하긴 했지만 이야깃거리로 삼지는 않았다. 그것에 대해선 딱히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을,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추측해야 할 일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정지현은 송정동을 떠나기 전 한 고물상 아저씨에게서 고철 한 덩어리를 얻어왔다. 1톤 트럭의 앞쪽 차체 프레임 같아 보였는데, 그 형태는 이미 어떤 조형성을 갖추고 있었다.
송정동을 떠나 우리가 향한 곳은 난지도 노을공원이었다. 그야말로 쓰레기 투어였다. 그러나 해질 녘의 노을 공원은 말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발아래의 땅이 쓰레기로 만들어진 인공 산이라는 것은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 사실이었다. 지도 이미지가 송정동을 지웠다면, 노을공원의 아름다움은 난지도를 지웠다. 노을공원에 오르기 전 정지현은 스튜디오에서 울룩불룩 요철 진 큰 철망을 내게 건네며 뭐가 보이는지 물었다. 뭘 본 뜬 것인지는 작가만 알 것이었기에 나는 성의 없이 아무 말로 대답했다. 사실 ‘무엇’이 무엇인지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고 요철이 묘하게 흥미로운 모양새라고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노을공원에 오르자 여러 공공미술 조각상들이 서 있었는데, 정지현은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철망으로 본 뜬 것이 바로 저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현은 몇 년 전 한동안 도심 속에서 이상한 곳에 자리 잡고 서 있는 조각상들을 찾아 다녔었다. 종로 대로변 영풍문고 앞에 생뚱맞게 앉아 있는 전봉준 동상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조각상의 일부 혹은 전체를 본떠서 조각화 하곤 했다. 그가 본 뜬 것은 조각상의 표면이었지만, 내게 그것은 어떤 물건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딘가에 놓여 있게 된 그 미스터리 자체를 떠내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이미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장소와 물건 사이의 총체성을 다시 구성하고 조각이 관여하는 특권적인 사물을 회복했다. 내게 그것은 이름이 없어야 할 사물에 잘못 붙은 이름을 제거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것을 장소 없는 상태로 되돌리려는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해석적 견해이지 정지현의 의지는 아닐 것이다. 그는 예민하고 섬세하게 살피는 것으로 사물에 관여하지 사물의 정치를 논하지는 않는다. 정지현은 클라이밍에 심취해 있는데, 홀더의 형태와 홀더가 붙은 벽의 경사에 따라 자세를 바꾸고 이동하는 것에 꽤나 능숙해 보였다. 클라이밍은 길을 찾는 스포츠다.
그는 얼마 전 내게 3D로 모델링한 땅 이미지 하나를 보내주었다. 미디어에 보도된 북한 어딘가의 지형이라고 했다. 얼마 후 스튜디오를 다시 찾았을 때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한 땅 샘플을 볼 수 있었다. 도색이 되어 있으니 제법 땅 같아 보이기는 했다. 그 즈음 우리는 갈 수 없는 땅과 조각의 관계에 대해서 한창 얘기를 나누었다. 갈 수 없는 땅이 뭔지는 모호했지만, 적어도 어떤 새로운 기술처럼 보이는 것이 이미지로든 물질로든 그곳을 지금 여기로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갈 수 없는 땅이 지도에서 추방당한 허구라면, 오히려 그곳은 이미지와 물질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영토일 것이다. 정지현은 그런 허구를 증언하는, 혹은 추측하게 하는 이유 있는 물건들을 찾아 온갖 것들이 밀려 나가 이름을 잃기 시작하는 경계선을 걷는다. 그의 조각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네모 반듯한 모양에 요철 진, 땅이라고 이를만한 그 얇고 가벼운 플라스틱 판은 의자 위에 이런저런 생활 잡품과 함께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가방을 든 사람
조각가의 손에는 망치나 정, 톱, 칼 같이 물질을 자르고 깎아내고 구멍 뚫는 도구가 들려 있을 것이라고 보통은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가방이라면? 가방은 무언가를 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거기서 그 무언가를 나누는 도구다. 겉으로 봐선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가방을 손에 드는 것이 조각가의 일이 된다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은 뭐라고 이를 수 있을까?
구글에 “내 이웃의 의자”를 검색하면 프로젝트에 참여할 주민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참여자가 VR로 직접 의자를 디자인하고, 만들어진 의자는 전시까지 되며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참여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양구군에서 게시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에는 참여자들이 VR 기계를 이용해 직접 의자를 디자인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의 일상적 공간에서 말이다. 군청 직원은 군청의 민원실에서, 주부는 집의 거실에서, 간호사는 병원 로비에서, 천문학자는 연구실 책상에서, 또 어떤 주민은 마을회관에서 VR로 자신의 의자를 만든다. 진지하고 신중한 와중 어린이처럼 즉흥적이고 경쾌하게 몸을 쓰며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이웃 주민이 구경하다 가기도 하고 반려견은 지루한 듯 하품도 한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정지현 작가는 노트북과 VR 기계를 가방에 넣어 그들의 공간으로 찾아가 그들이 의자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10여 개의 의자들은 3D 프린터로 제작되어 파로호 꽃섬의 나무 한 그루를 중심에 두고 던져 놓은 듯 설치 되었다.
내 이웃의 의자는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작품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 기반(community based) 공공미술의 성격을 띈다.1 여러 굴절을 지나온 공공미술 개념과 역사적으로 축적된 실천의 아카이브를 기준으로 내 이웃의 의자를 도식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유튜버 ‘왘싱’이 올린 한 영상을 보고 나면, 이 프로젝트의 어딘지 묘한 구석을 알아채게 된다. 그리고 ‘공공미술’을 분류 체계로 도입하기 보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기를 시도하게 된다. 전역한 직업 군인으로 양구에 거주하고 있는 왘싱은 내 이웃의 의자 프로젝트에 참여해 직접 의자를 디자인한 여러 명 중 하나다. 그는 주말 오후에 도시락을 싸서 자신이 만든 의자가 있는 파로호 꽃섬을 찾는다. 의자를 뒤에 두고 원두막에 앉아 점심을 먹고, 파로호를 둘러보며 다른 의자 작품을 보여주기도 하고, 춤추고, 자신이 만든 의자에 앉아 기타 치며 노래 부른다. 의자는 화면의 배경이든 구석이든 한 부분만을 차지할 뿐 올려다보는 주인공이 아니다. 갑자기 등장해서 존재감이 생겨버린 특별한 물건이지만 일상에서 스쳐가는 무심한 물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의자는 작품임을 넘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게 해 주는 한 물건이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물건이란 변화한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증거일 수도, 변화한 현실에 대한 인지의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한 물건이 촉발한 이야기는 크든 작든 삶과 관여한 현실을 재편한다. 그리고 삶과 현실을 표상하거나 대리하지 않고 삶의 구체적이고 작은 부분들을 드러낸다.
나는 VR 기계가 담긴 가방이 양구의 한 주민이 게시한 이야기 영상에까지 이르게 된 연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거기에는 분명 시간이 중요하게 도입되어 있는데, 그 시간은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물건이 등장하기까지의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VR이라는 기계일 텐데, 그것이 새로운 시각성을 가진 최신의 기계 장치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쉽고 간편하게 가방에 넣었다가 장소를 이동하여 다시 손쉽게 꺼내어 누구나 조작하여 쓸 수 있는 로우 테크놀로지로서 다루어 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와 매체 사용의 재발명은 긴밀히 얽혀 있다. 가방을 들고 저마다의 장소에 방문하는 정지현의 모습은 고도화된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아 다니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꾼과 더 닮아 있었다. 물론 정작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방만 열어 속에 든 것을 보여 줄 뿐인 이야기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의 미술이 거의 망각한 오래 전의 어떤 것을 회복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허구를 운반하는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1986)에서 찌르고 때리고 자르는 창의 문명과 채집하고 보존하고 나누어주는 가방의 문명이 분기되는 아주 오래 전을 되돌아 본다. 창이 영웅을, 주인공을 필요로 하고 정복, 개척, 승리와 패배, 구원과 희생의 서사를 구축한다면 가방은 작고 다양한 이름 없는 것들이 뒤죽박죽 순서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인 삶의 진실을 닮은 이야기를 위한 공간이다. 가방의 서사를 잃지 않기 위해선, 일단 우리는 가방을 마련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담고, 어딘가를 방문해서, 가방을 열어 안에 든 것을 나누고 이리저리 연결해보며 어떤 조형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계열의 공공미술은 건축물이나 도심 속 공공연한 공공장소에 세워지는 장식품 혹은 기념물로서의 공공미술에 대해 반발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등장했다. 수잔 레이시는 이 흐름을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라 명명했다. 지금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는 공공미술이라 불리는 것은 이처럼 여러 역사적 순간이 동시에 거주하고 있는 풍경이다. 때문에 공공미술은 여전히 여러 이념들 사이에서 논쟁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다. 특히 ‘공공’이라고 하는 담화는 ‘미술’이라는 담화와 마찬가지로 시대적 조건과 호응하며 물결치듯 변화하기 때문에 그곳은 늘상 담론의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유동성 속에서 세스 프라이스는 확산(Dispersion, 2002)을 통해 인터넷의 등장을 공공미술의 통시적-공시적 교차점에 도입하며 특권화 하는 탁월함을 보이기도 했다. ↩